같은 일이라도 누가 하면 로맨스이고, 누가 하면 불륜이라고 말한다.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이처럼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잣대가 흔하게 존재한다.
같은 행동을 두고도 어떤 사람에게는 너그럽고, 어떤 사람에게는 유독 엄격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감정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분명한 피해를 입고, 반대로 누군가는 그 틈에서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모든 일이 공평하게 만 흘러갈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문제, 더구나 공익과 관련된 문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야 한다.
누군가가 잘못된 부분을 지적했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문제 의식을 갖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문제를 누군가 대신 들여다보고,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공정을 외면하는 대신 이익을 얻는 사람도 있고, 공정을 기준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 만으로 오히려 불편한 사람, 심지어 공공의 적처럼 취급 받는 사람도 있다.
더구나 가장 공정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문제 의식조차 갖지 않는다면, 필요한 문제 의식을 제기한 사람은 어느 순간 의욕을 잃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문제를 제기한 사람의 이야기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주변에서 함께 문제의식을 가져주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분명히 알고도 묵인하는 일, 때로는 묵인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모든 문제 제기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때로는 오해가 있을 수도 있고, 사실관계를 더 살펴봐야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필요한 것은 편을 가르는 일이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고, 무엇이 공정한지를 함께 고민하는 태도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 문제에 대해 나도 한번 생각해 보겠다”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혼자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한 응원이 되기 때문이다.
법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는 든든한 법망이 되고, 누구에게는 두려운 법망이 된다면 과연 그것을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법과 제도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내가 아는 사람인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힘이 있는 사람인지에 따라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공정이 아니라 이해관계일 뿐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잘못을 지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더구나 그 사람이 한때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 또한 용기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만들어 내거나,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오히려 공격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을 낳을 뿐이다.
공정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내 사람에게 적용하는 잣대와 남의 사람에게 적용하는 잣대가 같은지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한 번 쯤 물어보았으면 한다. “만약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는 우리 스스로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알고도 침묵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작은 행동이라도 보태는 사람인가.
모든 사람이 앞장서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다. 때로는 말 한마디, 관심을 갖는 것, 사실을 확인해 보는 것,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편하다는 이유로 부당함을 외면하거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잘못된 일에 침묵으로 동조하는 사람은 되지 않았으면 한다.
공정한 사회는 누군가 한 사람의 용기 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묵인하는 사람보다 질문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침묵하는 사람보다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비로소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나에게 불이익이 없을 때만 공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불편해지는 순간에도 같은 기준을 지킬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진짜 공정이 아닐까.
그리고 그 시작은 거창한 정의가 아니라,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작은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부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