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은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조선시대 궁궐이다. 조선왕조는 건국 초기부터 경복궁을 법궁으로 창덕궁을 보조 궁궐로 사용하는 양궐 체제를 운영했다.
그러나 역대 왕들은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에 거처하는 것을 더 좋아했고 왕실 가족이 늘어나면서 차츰 창덕궁의 생활공간도 비좁아졌다.
이에 성종이 왕실의 웃어른인 세조 비 정희황후, 예종 비 안순왕후, 덕종 비 소혜왕후 등 세 분의 대비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창덕궁 주변에 창경궁을 마련했다.
창경궁은 왕이 정사를 돌보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생활 공간을 넓힐 목적으로 세워졌고, 처음부터 궁궐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무려준 뒤 기거했던 수강궁(1418년 창건)에 몇몇 전각을 보태어 세운 궁궐이다.
창경궁은 경복궁이나 창덕궁과 비교해볼 때 그 규모나 배치 등에 다른 점이 많다. 창경궁은 전각의 수가 많지 않고 규모가 아담하다.
공간의 구조와 배치도 경복궁처럼 평지에 일직선의 축을 이루도록 구획된 것이 아니라 창덕궁처럼 높고 낮은 지세를 거스르지 않고 언덕과 평지를 따라가며 터를 잡아 필요한 전각을 지었기 때문에 자유로운 분위기이다.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자경전(1777년 건립)도 언덕에 지어졌다.
창경궁의 또 다른 독특함은 조선시대 다른 궁궐과 주요 전각들이 남향으로 지어진 것과 달리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점이다.
창경궁의 경우 정문인 홍화문과 정전인 명정전은 동쪽을 향하고 관청 건물인 궐내각사와 내전의 주요 전각들은 남쪽을 향해있다.
창경궁의 남서북쪽이 구릉이고 동쪽이 평지인 지세라서 이를 거스르니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왕실가족의 생활 공간으로 발전해온 궁궐이기에 내전이 외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넓은 것도 창경궁의 특색이다.
왕들의 지극한 효심과 사랑, 왕과 세자의 애증, 왕비와 후궁의 갈등 등 왕실 가족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가 풍부한 창경궁. 또한 장희빈과 인현왕후, 영조와 사도세자의 사건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인 창경궁을 걸으면서 휴식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창경궁은 1909년 일본에 의해 동식물원 조성으로 궁궐이 훼손되고 1911년 창경원으로 격하되는 아픔을 지녔다. 우리정부는 1983년 창경궁으로 환원하고 복원공사를 진행했다.
창경궁은 매주 월요일은 휴궁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며, 오후8시 까지 입장하여야 한다.
관람요금은 어른(25세~64세) 1,000원이며, 10인 이상 단체관람은 800원이다. 만24세 이하 내국인과 만65세 이상 내외국인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별도 관람권을 구매하면 함양문을 통해 창덕궁과 연계관람도 가능하다. / 융합신문